치즈는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식품으로, 일반 유제품보다 훨씬 장기간 보존하면서도 특유의 맛과 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치즈의 우수한 보존력은 우유의 단백질과 지방 조성, 유산균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기산, 염분 농도, 수분 활성도 조절, 숙성 환경 관리 등 다각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프랑스의 까망베르(Camembert)는 피에스트롤리스티룸 카세이(P. camemberti) 표면 곰팡이층이 보호막 역할을 하여 내부 맛을 오랫동안 유지합니다. 네덜란드의 고다(Gouda) 치즈는 전통적인 염장 방식과 온도·습도 제어로 6개월 이상 보관해도 풍미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는 낮은 수분 함량과 강한 단백질 매트릭스로 인해 수년간 저장하면서도 부패하지 않고 깊은 감칠맛을 제공합니다.
치즈 발효의 시작, 미생물과 우유의 만남
치즈의 역사는 인류가 우유를 수급하기 시작한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유 자체는 단백질·지방·당분·무기질을 풍부히 함유한 식품이지만, 이로 인해 미생물 증식이 용이하여 상온에서는 쉽게 변질됩니다. 그러나 전통 치즈 제조 방식에서는 레넷(rennet)이라는 응고 효소와 유산균을 활용하여 젖당을 젖산으로 전환시키고, pH를 낮춰 치즈 커드를 형성합니다. 이때 생성된 젖산은 1차 방어막 역할을 하여 유해균 번식을 억제합니다.
특히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까망베르는 우유 응고 후 표면에 백색 곰팡이균을 도포하여 14~21일간 숙성합니다. 이 곰팡이층은 외부의 산소·수분을 차단하는 보호막이 되어, 내부에서는 효모와 유산균이 단백질 분해(proteolysis) 및 지방 분해(lipolysis)를 진행시키며 복합적인 맛과 향을 만듭니다. 스페인 라 만차(La Mancha) 지역의 만체고(Manchego) 치즈는 양젖을 사용한 뒤 염수에 숙성시켜 염도가 2~3% 수준으로 높아지고, 이 삼투압 작용이 미생물 성장 억제에 기여합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지방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12개월 이상의 장기 숙성을 통해 수분 함량을 32% 이하로 낮춥니다. 이 과정에서 치즈 내부의 수분 활성도(water activity)가 0.86 이하로 떨어지면 대부분의 병원성·부패균은 더 이상 증식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숙성 중 생성되는 로르산, 케톤, 알코올, 티올류 등 다양한 대사 산물은 항균 활성 물질로 작용하여 추가적인 미생물 방어를 수행합니다.
왜 치즈는 거친 환경에서도 상하지 않을까?
치즈의 높은 보존성 배경에는 다단계 방어 기제가 존재합니다. 첫째, pH 저하입니다. 숙성 치즈의 내부 pH는 일반적으로 5.0 이하로 유지되며, 이는 대다수 부패균과 장내세균의 최적 증식 범위(pH 6.5~7.5)를 벗어나는 수치입니다. 영국의 스틸턴(Stilton) 블루치즈는 pH 4.8~5.2 수준을 유지하여 블루곰팡이(P. roqueforti)의 성장만 허용하고 다른 불순 균주는 억제합니다.
둘째, 염도 조절입니다. 미국의 체다(Cheddar) 치즈는 제조 과정에서 커드를 소금물에 담가 염장(salting)합니다. 이때 치즈 외부로부터 삼투압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미생물 세포가 탈수되고, 세포막이 손상되어 부패균 성장이 억제됩니다. 셋째, 수분 활성도 감소입니다.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크림치즈는 숙성 후 수분 함량을 40% 이하로 조절하는데, 이 상태에서도 웰치아균 등 일부 유익균만 증식이 가능합니다.
넷째, 단백질·지방 매트릭스의 물리적 장벽입니다. 스위스 에멘탈(Emmental) 치즈는 단백질 네트워크가 치밀하게 형성되어 벌집 모양의 구멍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외부 미생물 이동이 어렵습니다. 다섯째, 숙성 중 발생하는 대사 산물의 항균 효과입니다. 네덜란드의 에담(Edam) 치즈는 숙성 시 생성되는 지방산과 알데하이드가 세포막 투과성을 변화시켜 미생물 성장을 억제합니다. 여기에 표면 곰팡이나 효모막이 추가적 보호층을 제공하여, 내부 치즈를 외부 산소·습기·미생물로부터 효과적으로 격리합니다.
치즈 보존 과학의 응용과 미래
치즈의 보존 원리는 단순한 전통 식품 문화를 넘어 현대 식품 공학에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자연 발효와 염장 기법을 활용한 천연 보존법은 화학적 방부제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전성을 확보합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같은 보호지리적표시(PGI) 치즈가 이러한 방식을 인정받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수출됩니다.
둘째, 수분 활성도 제어와 pH 조절 기술은 치즈뿐 아니라 육류·수산물 가공품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생선 가공물에 이 기술을 도입해 보관 기간을 50% 이상 연장한 사례가 있습니다. 셋째, 숙성 중 생성되는 천연 항균 물질 연구는 차세대 천연 방부제 개발로 이어집니다. 미국 농무부(USDA) 연구진은 치즈 숙성 과정에서 분리한 펩티드가 살모넬라균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넷째, 미생물 군집 제어(microbiome management) 기술을 통해 맛·향·질감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 산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들은 표적 유산균을 활용해 고유의 맛 프로파일을 가진 맞춤형 치즈를 생산하며, 기존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 치즈 보존 원리를 응용한 폐기물 저감형 포장 기술이 개발 중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치즈 숙성 중 발생하는 장벽성 단백질을 활용한 생분해성 포장재를 상용화하여, 식품 폐기물 감소와 환경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즈 보존 과학은 앞으로도 식품 산업 전반에 혁신적 가치를 제공하며, 다양한 분야로 응용될 것입니다.